수기

수기 [선입견을 넘어 공존으로, 일본 청소년 여행학교] 보민이의 일본 공정여행 수기

  • 공감만세
  • 2023-09-27
  •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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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23-24 겨울방학][일본]선입견을 넘어 공존으로, 일본 청소년 여행학교

2024-01-07 ~ 2024-01-15 2024-01-21 ~ 2024-01-29 2024-02-17 ~ 2024-02-25

글_ 서보민 / 사진_ 공감만세

 

1일차

우토로 마을을 처음 갔을 때에는 그저 허름한 집들이 있는 시골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토로 평화마을에 가서 그곳의 부관장님 김수환 선생님께 우토로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토로 마을은 2차 대전 때인 1941년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1300여명이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란 것을 알고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 마을이라고만 생각 했는데 한국 조선인들이 만든 마을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도와 지킨 마을이란 것을 알고 정말 자랑스럽고 대단하고 존경스러 운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2일차

오늘 고려미술관을 갔다. 고려미술관은 1988년 10월 25일 개관하였다. 그곳은 정조문께서 조선의 유물을 한국으로 가져가려다가 못하여 일본에 미술관을 열었다고 한다. 고려미술관은 정조문 선생님의 다방한 노력으로 조선의 미술공예품 1700점을 수집하셨다. 정조문 선생님께서 모으신 조선의 미술공예품 중에서는 황반장반닫이, 백자호, 문자도[충], 운룡문호, 청자은 각연화문매병, 청자철재백상강초화문매병 등등 조선의 공예 품들 중에서도 가치가 높고 희귀한 것들을 모아놓으셨다는 것을 보고 들으며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고려미술관을 간 후 여러곳을 거쳐 ‘귀무덤’이라는 곳을 갔다. 귀무덤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죽여 귀를 잘라놓은 곳이라 한다. 그런데 사실 귀가 아닌 코를 잘라놓은 곳이었고 코를 잘라놓았다고 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 같아 귀를 넣어 놓은 곳이라고 바꾸어 놨다고 한다. 귀무덤의 그런 진실을 듣고 나니 솔직히 화가 났다. 죽인 사람 수를 줄이기 위해 ‘코무덤’에 서 ‘귀무덤’으로 바뀐다니 정말 말이 안된다 생각했다. 귀무덤 의 진실을 듣고 난 일본인들에 의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되고 그러기 위해선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3일차

오늘은 오사카 국제 평화센터를 갔다. 오사카 국제 평화센터는 일본의 1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오사카라는 수도가 미국 전투기 수백대에 많은 차례 폭격을 당하고 참혹해진 수도에서 오사카의 시민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는 이런 참극이 일어나지 말자는 뜻과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솔직히 돌아보면서 미국만 잘못한 것으로 꾸며놓아 언짢기도 하였지만 피해를 받은 무고한 시민들을 이해해보려하였다. 그 후에는 오사카 성으로 갔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히데요시 시절 때 지어진 건물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이라는 것은 불편했지만 최대한 좋은 풍경만 보기로 했다. 오사카성 다음에는 아시아 도서관으로 갔다. 아시아 도서관은 ‘사카구치 관장님’께서 아시아를 공부하는 모임이라는 곳에서 아시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 아시아와 관련한 도서관을 만들자라고 결심하고 만든 도서관이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한 도서관에서 점점 다양한 책들을 모아 시작한지 40년이 지난 후에는 30만권의 책이 있었다. 우리는 그 도서관에서 관장님의 이야기와 꿈 을 듣고 봉사를 했다. 그 곳에서 이곳저곳 흩어진 한국의 책들을 찾아 모아놓고 정리 해주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한국의 책들을 모으면서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는 것이 신기했고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즐거웠고 보람을 느꼈다.

 

4일차

오늘은 버스를 타고 ‘구라시키’로 갔다. 구라시키로 가는 도중에 너무 멀어서 중간에 휴게소를 들렀다. 휴게소에서 나는 무려 40cm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가격은 850엔 정도로 준수한 가격이었다. 휴게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버스를 타고 구라시키로 갔다. 구라시키는 주민들이 주도하여 구라시키의 아름다움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으로 시작했고, 일본관은 그 움직임에 반응하여 구라시키시 전통 미관 보존 조례 제정 등 제도화까지 이루었다고 한다. 구라시키 거리를 조금 둘러본 후에는 오하라 미술관으로 갔다. 오하라 미술관은 서양의 다양하고 뛰어난 미술 작품들을 수집하여 공개할 것을 마고사부로에게 제안하여 세워진 미술관이었다. 오하라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서양의 다양한 작품들과 감명깊고 특이한 뜻을 듣고 세상에는 특이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5일차

오늘은 일어나서 ‘토모노우라’ 마을로 갔다. 토모노우라 마을은 일본의 지중해라 불리는 세토내해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라고 한다. 한때 고속도로 개발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국가를 상대로 문화보존을 위한 소송을 통해 시민의 힘으로 마을을 지켜낸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곳에서 장기체류하며 2008년 ‘벼랑위의 포뇨’라는 영화를 만들어 내며 배경지로 유명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토모노우라는 과거 조선통신사의 기항지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진세키고원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안심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을을 만들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진세키고원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마을을 포기하지 않고 마을을 보존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는 것 을 보고 정말 마을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크고 존경스럽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6일차

오늘은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피스윈즈재팬’이라는 곳에 갔다. 피스윈즈재팬은 재해, 분쟁, 빈곤 등 의 문제 해결을 목표로 1996년 설립된 국제 NGO라고 한다. 피스윈즈재팬은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가장 신속하게 제공하고, 1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피스완코 프로젝트’라는 봉사활동을 하였다. 피스완코 프로젝트는 일본 전국에서 유기견 살처분률이 제일 높았던 지역을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3년만에 살처분률 제도를 달성하고, 현재까지 계속해서 구조활동을 펼쳐 7천여 마리의 유기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픈 개들을 보고 여러 개들을 산책시키고 밥을 주며 개를 키우는 것을 체험했고, 구조견들의 대단함을 느꼈다. 체험해본 구조견의 이름은 루크였고, 루크는 우리가 숨어있는 곳을 1분도 채 안되어서 찾았다. 피스완코 프로젝트를 하면서 유기견 그리고 견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구조견을 할 수 있음을 알았고, 강아지와 개들의 후각의 뛰어남에 대해 감명받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7일차

진세키에 니고가와빌리지라는 건물은, 메이지 시대에 초등학교로서 사용된 건물이었지만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폐교가 되었다고 한다. 니고가와 빌리지를 운영하시는 야가와상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다시 고쳐 숙소 겸 진세키에서의 다양한 활동체험 시설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짐을 푼 후에 일본의 놀이 중 하나인 대나무로 만든 프로펠러 모양의 장난감을 만들었다. 수평을 만들기 위해 사포질로 계속 문지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다 만들고 나니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대나무 장난감을 만들고 난 뒤 점심을 먹었다. 삼계탕이 나와 정말로 기뻤다. 그 후에는 낚시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미끼없이 물고기 중, 소를 2마리 씩이나 잡아 신기했다. 낚시를 한 후에는 계곡으로 가서 추가적으로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30분동안 찾아봐도 없어서 포기했다. 저녁으로는 바비큐를 먹었다. 채소, 과일, 고기가 모두 충분해서 좋았다. 우리가 먹은 고기중에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님이 잡수신 소고기도 있었다. 소고기는 (그 이외의 고기도)선생님께서 구워주셨는데 정말 잘 구우셔서 좋은 소고기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거기 있으신 사장님들께 홈스테이 때 선물해드리려고 한 선물을 모두 드려서 좋았다.

 

8일차

오늘은 마지막날! 마지막날에는 히로시마로 갔다. 그 후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으로 가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에 대한 역사를 들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에는 ‘리틀 보이’라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 폭탄이 떨어지고 히로시마 전역은 아름다운 마을이 폐허가 되었고, 일대가 방사능에 피폭되어 생물이 살 수 없게 되었고, 주위는 불바다가 되어 살아있는 생물들은 불에 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참극이 벌어진 후 일본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곳에 추모비를 세우고 평화기념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긴 설명이 끝나고 원자폭탄으로 돌아가신 고인분들의 추모비로 가서 모두 다같이 그 곳에서 그분들에게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묵념을 다 한 후 조를 나누어서 기념품을 사러가기로 하였다. 숙소까지의 거리가 꽤 되어서 30분밖에 시간이 없어서 거의 둘러보다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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