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필리핀 답사 여행기_월간토마토 성수진 기자] 우리 그리고 나를 들여다 본 하루
  • 공감만세
  • 2014-11-19
  • 1736

여행정보

여행장소
필리핀 바기오 일대
관련상품
예술, 이고롯과 탐아완에서 만나다

글_월간토마토 성수진 기자

 

바기오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다. 호텔에서 느즈막히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햇볕은 쨍한데, 가을인 것처럼 선선하다. 바기오에서 우리의 이동을 도와줄 마이크의 차를 기다리며 호텔 밖에 잠깐 서 있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회사에 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멀리서 아이 두 명이 웃으며 걸어온다. 귀여워 웃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두 아이가 가까이 다가온다. “깁 미 텐 페소” 우리로 따지면 300원 정도 가치의 돈을 달라고 말하는 두 아이에게, 고개를 젓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갑 속엔 5만 원 정도의 돈이 있었고 동전도 많았다. 멀어져 가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내게 300원은 잃어버린다 해도 그리 아깝지 않은 가치인데 그것으로 저 아이들이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다면?

 

 

 

다양한 시각으로 다른 면을 바라보기

마이크가 도착해 일행 모두 차에 올랐다. 방금 전에 겪은 일을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모두 웃었지만,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동동은 내게 잘했다며, 여행지에서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관광객들에게 구걸한 돈으로 생활하게 되면 학교도 나가지 않고, 일을 해 돈을 벌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귀엽다고, 당장 마음 편하자고 돈을 주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필리핀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첫 일정은 벤켑 박물관 관람이었다. 벤켑 박물관은 필리핀 현대미술의 별이라고 불리는 베네딕토 카브레라의 작품과 그의 소장품, 전통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베네딕토 카브레라가 이끄는 차눔재단이 설립했다. 필리핀 예술이라고 하면 전통 악기 연주에 전통 춤, 전통 공예품 같은 것만 떠올렸는데 ‘필리핀 현대 미술’역시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같은 현대를 살고 있는 필리핀이란 나라를 얼마만큼의 편견으로 바라봤던 걸까.

 

벤켑 박물관은 1층 입구로 들어가 지하로 한 층씩 내려가며 관람할 수 있다. 도슨트가 안내해 주는 대로 작품을 감상했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베네딕토 카브레라의 여러 회화 작품 중에 빈민 지역에 사는 사벨을 그린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사벨의 모습에 영감을 받은 베네딕토 카브레라는 그녀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도슨트의 안내를 끝으로, 나와 동동, 소현, 승균, 지원은 건물 밖으로 이어진 정원으로 나갔다. 하늘의 색과 멀리 산의 색, 가까이로 피어난 여러 꽃의 화려한 색, 멀리 보일 듯 말 듯, 하늘과 구별이 될 듯 말 듯한 바다의 색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경과 날씨였다. 벤켑 박물관에 더 머무르기로 한 시간 동안, 넷은 계단식 논처럼 꾸민 정원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이야기 나누었다. 여행만큼 개인의 관심사나 생활 습관, 성격 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또 있을까. 넷이 의자에 앉아 자신과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동안, 미술사를 전공하는 준원은 한 번 둘러 봤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천천히 감상했다.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사람들

벤켑 박물관에서 나와 점식 식사할 식당으로 향했다. 바나나 잎을 깐 큰 접시에 함께 먹을 반찬이 담겨 나왔고 공기에 한 번 담았다 엎어 놓은 밥덩이들도 접시 하나에 담겨 나왔다. 덥고 습한 기후의 필리핀 사람들은 밥을 많이 먹고 반찬은 짜게 만들어 적게 먹는다고 했다. 밥은 우리가 먹는 것보다 점성이 덜했고, 반찬은 우리가 먹는 것보다 맛이 강했다. 생선이나 돼지고기로 만든 짭짜롬한 반찬과 함께 밥이 쉴 새 없이 입으로 들어갔다.

 

공감만세의 도서관 짓는 일로 필리핀에 1년 정도 머물렀던 동동에게, 한국에 돌아와서 그리웠던 필리핀의 모습이 있었냐고 물었다. 동동은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특정한 누군가가 그리운 게 아니라 밝고 쾌활한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운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로 쾌활하고 친절했다. 이날 식당 화장실에서 본 알림 종이처럼 위트 있었다. 변기 위에 발을 대고 쪼그려 앉지 말고 엉덩이를 대고 앉으라는 말을 ‘개구리처럼 말고 공주처럼 앉으라.’라고 표현했다. 알림 종이 한 장이 웃음 짓게 했다.

 

식당에서 나와 탐아완 예술인 마을로 향했다. 탐아완 예술인 마을은 차눔재단이 지역의 예술과 문화를 교육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해체해 와 다시 건축한 이푸가오족 전통 가옥 여덟 채와 부자, 귀족, 주술사 등이 살 수 있는 8각형 모양의 칼링가 오두막이 두 채 있다. 설명을 들으며 탐아완 예술인 마을과 뒷동산을 둘러보았다.

 

 

 

탐아완 예술인 마을은 운영비 일부를 정부 지원 받고, 필리핀 예술가 활동을 지원한다. 금전적 지원에서부터 작품을 소개하고 파는 일을 지원하고 있으며 미술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을 초대해 미술교육도 진행한다. 이곳의 예술인들은 자체적으로 워크숍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한다. 우리는 화가인 타라와 함께 색리본과 실, 깃털, 비즈 등으로 드림캐처를 만들었다. 타라의 도움을 받으며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타라는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친구가 탐아완 예술인 마을을 소개해 줘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타라는, 필리핀에서는 예술가로 활동하는 데 전공이나 출신 학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은 어떠냐고 물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몰려 왔다.

 

드림캐처를 만들고 나서,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갓 스물을 넘은 남학생과 간호사로 일하는 20대 초반 여성과 함께 전통 축제를 벌였다. 남자들은 전통 악기 연주를 배우고 여자들은 전통 춤을 배워 어울리며 놀았다. 우리 중 누구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에게 악기와 춤을 가르쳐 준 필리핀 청년들의 전통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들은 학교에서 전통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 탐아완 예술인 마을에서 전통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낯선 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려고 애썼고 우리는 감동했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사람과 밤

탐아완 예술인 마을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삼계탕과 비슷한 닭요리가 나왔다. 간장 같은 소스에 닭고기를 찍어 밥과 함께 먹으니 맛이 그만이었다. 음식 냄새를 맡은 고양이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음식을 달라고 우는 고양이를 어느 누구도 식당 밖으로 쫓지 않았다. 그저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음식을 주지 않겠다고 표현했다.

 

저녁 식사 이후엔 함께 여행하는 다섯이 함께 이야기했다. 각자 여행하며 기억에 남았던 것, 인상 깊었던 것을 이야기했는데 서로 다른 기억을 꼽는 게 재밌었다. 필리핀에 관해 원래 갖고 있었던 이미지와 직접 접한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도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직접 접해 보지 않은 필리핀에 관한 편견, 하나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이미지는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어떤 이미지는 더 짙어지기도 하는 경험을 했다.

 

 

 

잘 때가 다가오고 있어 서서히 걱정이 됐다. 탐아완 예술인 마을에서 숙소로 쓸, 쾌쾌한 냄새가 나며 벌레가 다니며 벽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방에서 어떻게 잘 것인지 걱정했다. 냉정한 시각으로 봤을 때 조금 불편한 숙소일지는 몰라도, 그리 나쁜 숙소는 아니었기에 내 불평이 잠시 놀라기도 했다.

 

함께 이야기 나누다가 잘 준비를 하러 먼저 방으로 갔다. 지원이가 먼저 와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지원이는 언니이고, 기자라고 하는 내게 궁금한 게 많았는지 이것저것 묻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조언해 주기를 바랐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히려 조언을 들어야 하는 건 내 쪽이었다. 지원이는 여행할 때 자기 전에 꼭 하루 있었던 일을 정리해 적는다고 했다. 있었던 일은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까지 정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 여행마다 변화하는 자신을 만난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불평불만 없이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원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적합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었다. 내게도 무언가에 관한 생각이나 느낌을 물어봤는데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지원이는 생각하는 시간을 자주 보내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 표현하는 활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가끔 일반학교에 다니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대학교에서 만나거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없고 서로 가식적으로 대한다고 들었어요. 왜 그런지 혹시 아세요?” 지원이가 어려운 질문을 해 왔다.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며, 아마도 자신만으로도 힘들어서 다른 이에게 관심을 안 두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다른 사람 힘들 때 도와주면, 다른 사람도 나 힘들 때 도와주지 않나요?” 지원이의 말에 잠시 동안 멍해졌다. 그리고 지원이 처럼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귀찮아서 생각거리조차 되지 않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고민의 주제였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보다 열 배쯤은 따뜻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하루에 내 자신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얼마나 보내는가. 그것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 불을 끄고 나서도 여러 생각 때문에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이 밤이 필리핀에서 보내는 세 번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