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일본 답사 여행기_공감만세 송수민 코디] 일본에 남겨진 조선의 역사 '아리타'와 '이마리'
  • 공감만세
  • 2014-07-01
  •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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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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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을 넘어 공존으로, 일본 역사평화 공정여행

글/사진_송수민 코디네이터 

 

2016.07.08~10 2박3일 후쿠오카 여행 / 인천공항 - 후쿠오카공항 - 하카타역 - 토요호텔

 

마침 큐슈지역은 때 아닌 이른 장마로 습하고 후덥지근했다. 주말을 맞아 북적거리는 인파를 지나 후쿠오카 공항에서 공감만세 일본 여행의 파트너 백선생님과 함께 일본의 새로운 곳을 찾아 자가용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과 반대인 운전자석과 보조석은 적응이 안된다. 보조석에 앉았지만 내가 운전을 하는 것처럼 온 신경이 쓰이는건 이때문일까.

 

비행기로 한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일본, 왜 운전석이 반대일까 궁금했다.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영국에서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에 마차의 마부석은 옆 좌석의 사람을 채찍으로부터 보호기 위해 오른쪽에 배치했다고 하는데, 독일에서 자동차를 발명하면서 오른손잡이에 유리한 왼쪽에 운전석을 배치, 하지만 자존심이 쎈 영국은 그대로 오른쪽에 배치했고 이를 일본이 받아들였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답사의 첫번째 목적지 '아리타'의 기차역 앞의 택시. 택시기사들이 오른쪽에 앉아있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리타. 사가현 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아리타는 오래전부터 도자기 마을로 유명했고 현재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616년 조선인 도공 이삼평 일행이 이즈미산에서 하얀 백토 광산을 발견하면서 아리타에서 도자기 생산이 본격화되었고, 아리타의 번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인 이삼평은 왜 일본의 아리타에서 도공의 삶을 시작했을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도공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삼평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 중 한명이라고 한다.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일본의 보물로 만들기 위한 사가현의 번주였던 나베시마 나오시게에 의해 일본에서 그의 기술을 펼쳤던 이삼평의 하얗고 탐스러운 백자는 아리타도기(혹은 이마리도기)라고 불리며 전 일본의 호평을 넘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었지만 그의 공을 인정하던 많은 아리타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이삼평의 비석이 아리타의 전망 좋은 신사 언덕 위에 아직도 남아있고, 매 년 주민들은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일본식 제가 아닌 한국식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비가 세워진 당시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던 당시였지만, 아리타의 주민들은 그 당시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삼평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니, 그의 명성과 아리타에 남긴 그의 흔적이 얼마나 깊고 넓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아리타의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은 '이삼평 비'와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이삼평 비

일본의 아리타, 그리고 아리타에 담긴 조선인 이삼평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책과 함께 찍어보았다.

 

'이삼평 비'에 오르기 위해서는 꽤 오래된 신사를 지나야 한다. 이 신사를 오르다보면 아주 재미나고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계단이 꽤 가팔라서 땅만 보며 걷던 내 발에 철길이 밟혔다. 의아해 하며 고개를 드니, 계단의 정상이자 신사의 초입에 기찻길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갑자기 전자음이 울리더니 멀리서 전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전차에 길을 내주며 잠시 넋을 놓고 이 기이하고 재미있는 광경에 시선은 기차 꽁무니를 쫒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신사 앞을 지나가는 전차, 반대 편에있는 가파른 계단 정상에 오르자마자 철길과 맞닥뜨린다. 어떤 안내판도 없고 낡은 철길만이 '이 곳에 기차가 다니니, 조심하라'고 말해준다.

 

 

'이삼평 비'가 위치한 전망 좋은 언덕, '토리의 언덕'이라고도 불린단다. 일본식 옛 건축물들 사이로 도자기 굽는 가마의 굴뚝들이 이 곳이 도자기 마을 '아리타'라는 것을 알려준다.

 

일년에 한번, 도자기 축제가 열릴 때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아리타 속에 담긴 여럿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희망한다. 그렇게 고즈넉한 거리를 걷다가 만난 역 앞 카레집에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잡았다. 아담한 규모의 역 앞 카레가게는 조금 특별했다.

 

카레집 사장님 오타 히로미, 작은 체구에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가진 그녀는 아리타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도자기로 이름을 떨치던 당시 운영하던 카레가게의 분점을 내고 공장까지 낼 정도로 장사가 잘 됬지만,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그 당시 아리타 역에서 근무하던 역장이 "아리타는 도자기의 마을이니, 카레를 도자기에 담아서 도시락에 판매해보는게 어떻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카레집에서 일하던 아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아리타에서 생산된는 다양한 도자기들에 구운카레(야끼카레)를 만들어 판매하고, 도자기는 본인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식당에 온 손님들은 맛있는 카레와 더불어 아리타에서 만들어진 도자기까지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아리타에는 수 많은 공방들이 있고, 공방마다 특유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기에 아리타에서는 수십가지 스타일의 도자기를 만날 수 있고, 일본 천황이 사용하는 도자기를 만드는 공방도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의 구운카레(야끼카레)를 일본 유명 연예인이 최근 맛집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덤으로 도자기까지. 원하는 도자기 그릇을 선택할 수 있고, 도자기 별로 가격이 달라진다.

 

아담하지만 아리타를 사랑하는 마음과 카레의 맛이 꽉 찬 카레집 사장님

 

카레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리타 관광협회, 아리타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디자인의 도자기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일본의 여름에 빠지지 않는 '후우링'을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후우링'은 한국의 '풍경'과 비슷한데, 유리나 자기로 만들고 그 밑에 기다란 종이를 매달아 바람에 따라 청아하고 시원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재미있는 것을 하나 만날 수 있는데 바로 '도자기 인형극'이다. 과거 박람회에 도자기 제품을 출품하기 위해 만들었다던 도자기 인형들이 아직까지 그 위엄을 자랑하며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아리타에 내려오는 전설을 도자기 인형극으로 풀어냈는데, 용의 형상을 한 도자기는 용 머리만 10KG이 넘고, 만드는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고하니 그 섬세함 또한 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여름을 장식하는데 빠질 수 없는 '후우링', 도자기와 바람이 만나 만들어내는그 소리는 청아하다 말하기엔 부족하다. 꽤나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들, 움직임 또한 섬세하다.

관광협회 내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원하는 도자컵에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음료의 종류보다 컵의 종류가 훨씬 많아 고민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텅 빈 거리를 걷다 관광협회 직원에게 물어 찾아간 곳은 이삼평의 14대 손이 운영하고 있는 도자기 공방.

한참을 불러도 나오지 않으셔, 자리를 비우셨나보다 싶어 돌아서려 할 때, 2층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우직함이 느껴지는 얼굴로 '이라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외친다.

 

역시, 공방내에는 이삼평의 도자기와 꼭 빼닮은 하얗고 탐스러운 백자들이 놓여있고, 이는 마치 달 여러개가 떠 있는 듯 우아하다. 그리고 자뭇 다른 스타일의 자기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는 13대손과 14대손(현재의 주인)이 만든 도자기라고 한다. 도자기의 디자인이며 색감이 사뭇 달라 물으니, 6대손까지 요업(도자기를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다 무슨 이유인지 가마가 손실되고 그 후부터는 도자기를 만들지는 않고 도자기와 관련된 기타 직종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13대손, 현재 주인의 아버지때부터 다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공방 중심에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이삼평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고, 자신의 도자기를 쳐다보고있다. 현재 주인인 '카나게 산베이'씨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삼평에 대해 더 알리고 싶다고 한다. 본인에게는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벽 한켠에 붙어있는 한국관광공사의 포스터가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채 널부러져있다.

 

이삼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꽤나 흥미진진하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같이 오면 함께 이삼평비, 묘등을 다니며 이야기 하자고 한다. 꽤나 다음 여행이 기대가 된다.

 

'아리타'를 지나 '이마리'로 출발했다. 1시간 남짓 차로 달리니 한적한 '아리타'와는 달리 조금은 관광화과 되어있고 사람들이 보인다.

 

사가현 : 오카와치야마 이마리 도자기마을

 

'이마리'의 풍경 또한 특이한데, 일본식 건물들이 잘 구획되어 위치해있고, 도자기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공방들이 쭉 줄지어있다. 가게마다 '후우링'을 메달아 놓아서 인지, 일본식 건물이 즐비한 골목을 거닐어서 인지, 일본 할머니들 특유의 웃음때문인지 약간 어질하고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잘 정돈된 길 양 옆으로 일본식 주택, 그리고 안개 뒤덮인 산. 굴뚝에 쓰여진 도자기 가문의 표시, 사람을 몽환적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이마리.

 

 

이마리에는 조금 특별한 곳이 있다. 도공들의 공동묘지, 이름을 남긴 자가 있는 반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떠난 800여명의 도공들의 묘를 모아둔 '도공 무연묘'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고려인의 묘'이다.

 

마을 건너편 산 아래 자리잡은 도공들의 공동묘지로 가는 길, 작은 돌다리에는 '이마리'다운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는것이 인상적이다. 강 밑에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있고, 앞에 놓인 수백여개의 묘와는 다소 상반된 분위기이다.

 

다리의 양 면은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다. 그 다리 맞은 편, 수백여개의 도공들의 묘가 도자기 마을 '이마리'를 지켜보고 있다.

 

클레이파크 > 소식 > 일본 큐슈지역 탐방기(4) - 이마리 오카와치야마

 

수 백여개의 관리된 묘들 사이에 자리잡은 무연묘들은 이름없는 자들끼리 모여 서로 위로를 하는 것일까, 조금은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서글픈 느낌을 주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렇게 이름도 없이 남겨지게 된 걸까. 사뭇 그 사연이 궁금하다.

 

무연묘들이 서로를 위로하듯 뭉쳐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은 부처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 보다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풀 숲에 버려진 고려인의 묘를 만날 수 있다. 기다란 두개의 비석. 우거진 풀 숲 사이 다 허물어져가는 비석속에 담긴 사연은 무엇일까. 임진왜란, 정유왜란등의 전쟁통에 끌려와 일본에서 새 삶을 펼쳐야 했던 고려인들은 자신들이 빚어내는 도자기에 무슨 사연과 꿈, 감정을 담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남겨진 그들의 흔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우거진 풀 숲 사이로 고려인의 묘가 보인다.

 

이렇게 '아리타'와 '이마리' 답사 여행은 끝을 맺었다. 일본 속에 남겨진 우리의 역사와 이야기. 일본의 도자기에 담긴 수 십가지의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한 편,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만들어낸 도자기'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