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변화, 필리핀 빈민지역 주민조직을 다시 만나다
글/사진_이두희 팀장
편집_황가람 코디네이터
다시 찾아간, 변화를 꿈꾸는 현장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지역은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복합적인 삶의 이야기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사회적기업 (주)공감만세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공정여행을 통해 바세코와 바공실랑안 같은 마닐라 도시빈민 지역을 방문해왔다. 공감만세의 공정여행은 지역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귀중한 기회였다. 우리는 거리의 풍경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고, 그들의 삶에 잠시나마 동행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디자인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국경이 닫히고 교류의 통로가 끊기면서, 우리가 사랑했던 지역과의 연결도 잠시 멀어졌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그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왔다. 이번 답사는 그래서 더욱 의미 깊었다.
필자인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지역을 찾았지만, 공감만세의 오래된 인연을 통해 이미 익숙했던 이름과 얼굴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후에도 여전히 지역을 지키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주민조직들의 모습이었다.
▲ 바세코 UPA와 회의 모습 (©공감만세)
바세코와 바공실랑안, 그리고 주민조직들
먼저 찾은 곳은 마닐라 만 해안가에 위치한 ‘바세코(Baseco)’ 지역이다. 바세코는 마닐라에서도 대표적인 빈민지역으로 손꼽히며, 수천 가구가 비공식 정착촌에서 밀집하여 살아가고 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해안가에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도로는 좁고 울퉁불퉁하다. 외부에서 본다면 단지 ‘빈곤한 지역’으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공동체의 결속과 삶을 바꾸려는 의지가 응축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까발리캇(Kabalikat)과 UPA(Urban Poor Associates)는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다. 까발리캇은 이름 그대로 ‘동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조직은 지역 주민들, 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위생 환경 개선, 교육 캠페인, 생계 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은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일상의 지속적인 힘이 된다.
UPA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도시빈민의 권리를 대변하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연합 조직이다. 이들은 주거권 확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거나, 긴급 재난 발생 시 지역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등 실질적인 생활 기반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무엇보다도, 이 조직들은 외부의 지원을 기다리기보다 내부의 자생력을 키워가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 바세코 UPA 활동지 답사 모습1 (©공감만세)
▲ 바세코 UPA 활동지 답사 모습2 (©공감만세)
▲ 바세코 UPA 사무실 모습 (©공감만세)
퀘존시티의 바공실랑안(Bagong Silangan)은 또 다른 모습의 도시빈민 지역이다. ‘바공(Bagong)’이 의미하듯 이곳은 새롭게 형성된 지역으로, 수도권 외곽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대거 모여 살고 있다. 도로와 하천 사이로 주택과 점포, 그리고 공공시설이 뒤섞인 이곳에서 우리는 청년 주민조직인 YES-BS(Young Entrepreneurs Society of Bagong Silangan)를 만났다.
YES-BS는 45세 미만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조직이다. 이들은 청년 실업, 학교 밖 청소년 증가, 쓰레기 문제 등 다양한 지역 과제를 직접 마주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해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이 직접 기획한 환경 캠페인, 지역 커뮤니티 마켓, 교육 멘토링 프로그램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인 청년 리더십 육성의 통로로 기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 청년들이 스스로를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변화의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을과 사회가 자신들에게 무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변화시켜야 할 공간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낡고 불안정한 집들 사이로, 그들의 활동은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어주고 있었다.
▲ 바공실랑안 YESBS 활동지 답사 모습1 (©공감만세)
▲ 바공실랑안 YESBS 사무실 모습 (©공감만세)
▲ 바공실랑안 YESBS 활동가와 지역 주민들 모습 (©공감만세)
연결과 연대,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
이번 답사는 단순한 ‘현장 확인’을 넘어, 다시금 사람과 사람, 공동체와 공동체가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되살리는 여정이었다. 공감만세의 공정여행이 단절되었던 시간 동안에도, 주민조직들은 끈질기게 지역을 지켜내고 있었고, 우리는 그 과정의 일부분을 다시 연결할 수 있었다.
이제 다음 주자로 DB김준기문화재단의 청소년 장학사업인 ‘DB드림빅’ 장학생들이 이곳을 찾게 된다. 이들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주민조직과 함께 지역을 바꾸는 ‘과정’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직접 발로 디디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배우는 경험은, 학생들뿐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에게도 소중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 바공실랑안 YESBS와 회의 모습 (©공감만세)
앞으로도 우리는 이 연결을 지속하고자 한다. 현지 주민조직과의 장기적인 파트너십,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국제연대 활동 등을 통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공정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며, 연결을 만들어가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는 연대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식이다.
마닐라의 바세코와 퀘존시티의 바공실랑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이미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길에 동행하며, 한국과 필리핀의 청년들이 함께 나아갈 새로운 연대의 길을 꿈꾼다. 이제, 다시 연결된 이 길 위에서 다음 이야기를 써내려갈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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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공감만세는 지역 문제 해결과 지역 활성화를 돕는 대안을 발굴 및 실행합니다. 지속가능관광, 고향사랑기부제 키워드로 국내외연수, 연구&컨설팅, 생활인구 증대 사업, 지역관광추진조직(DMO) 운영, 국제교류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합니다.
더불어 지속가능관광지방정부협의회 사무국으로 활동하며, 지속가능한 관광 산업을 통한 인구 및 지역소멸 문제 해소 방안에 관한 활동도 이어 오고 있습니다.문의) 070-4351-4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