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2021 아이쿱생협 활동가기금 제주 공정여행]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 공감만세
  •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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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쿱생협 활동가기금 제주 공정여행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2021 아이쿱생협 활동가기금 제주 공정여행

글, 사진_임민지

 

“동백꽃만 보기보다는 이 나무들의 삶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동백동산 숲 해설가 문윤숙 선생님은 동백동산인데 왜 이렇게 꽃이 없어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동백동산에 동백꽃이 적은 이유는 동백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성장이 더디기 때문이다. 주변 나무들에 가려 해를 보기 힘든 동백나무는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열심히 가지를 뻗어 올려야 한다. 꽃을 피울 여력이 없는 것이다. 꽃송이를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위로만 자라난 동백나무를 보면서, 동백나무 나름의 간절함과 치열함이 느껴졌다. 큰 노력 없이 태양 빛을 듬뿍 받고, 보기 좋게 다듬어진 화려한 동백나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공정여행은 이와 같이 드러나는 아름다움보다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34일 동안 공정여행을 하면서 지역주민들 목소리로 여행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그 지역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보석 같은 마을 이야기에 웃음 짓기도 했고, 가슴 아픈 역사에 눈물 짓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감만세와 함께 한 여행에서 느낀 아름다움에 대해 나누어보고자 한다. 

서우봉 정자에 오르면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이 경치를 보기 위해 올 해만 다섯 번 정도 서우봉에 오른 것 같다. 하지만, 늘 정자에만 머물다가 내려왔고, 서우봉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찾았던 것이다.

이번 공정여행을 통해서야 처음으로 서우봉을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최경진 작가님 인솔 하에 서우봉에 있는 일제 진지동굴을 방문했고, 서우봉과 관련된 역사를 들었다. 일몰명소이기 이전에 제주도민의 가슴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소였다. 여행지를 여러 번 다녀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진지동굴은 입구에서부터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일본군이 제주도를 진지화 하기 위해 강제로 희생되었을 제주 도민들, 그리고 4·3 사건이 있었을 때 이곳에서 숨어 지낸 도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함께 여행한 분들과 마음을 나누며 이 아픔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되뇌었다.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더 나아가 우리 다음 세대, 혹은 다른 지역에서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이 되리라 믿는다.

 

다음 날, 방문한 동백동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동백동산은 벌목이 금지되어 나뭇가지들이 가지런하지 않다. 하지만, 나무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 길을 만들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서로를 살리기 위한 적당한 거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돌에 뿌리를 잘못 내려 쓰러진 나무도 있었으나, 그 쓰러진 나무를 딛고 자라나는 새로운 나무의 모습도 정말 경이로웠다. 어쩌면 자연은 이미 공존을 위한 올바른 길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

 

오후에는 꽃마리 협동조합을 방문했다. 꽃마리 협동조합은 농가에서 직접 수확한 친환경 원료를 사용하여 비누와 세제를 만들고, 제주 경력단절 여성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자연에게 안전한 것이 곧 사람에게 안전한 것이라는 믿음 아래, 사람과 생태계가 모두 건강하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꽃마리 협동조합을 보며,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마을이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세제뿐만 아니라, 용기 사용에 있어서도 환경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용기내 지도' 제작, 세제 용기 반환처 확장 등 용기 재사용을 일상화하기 위한 노력이 감동적이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꽃마리를 보며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에는 구좌읍 평대리에서 프로젝트 짓다'를 만났다. ‘프로젝트 짓다는 농업을 기반으로, 청년들의 자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 청년공동체이다. 현재는 제주 구좌읍 평대리 마을주민과 제주에 살고 있는 청년들을 잇는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커뮤니티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티셔츠의 문구가 짓다의 가치관을 말해준다.

무언가를 길러내는 마음, 누구에게나 농부의 기질이 있습니다.”

티셔츠 문구를 읽으며 농부의 마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다리고, 존중하고, 보살피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까. 이 마음을 기억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프로젝트 짓다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는 평대리 홍반장', 석희 삼춘이 진행하는 마을 투어에 참가했다. 마을 투어는 평대리 당근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근 꽃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석희 삼춘의 질문에 당근꽃을 본 적도 없는 나는 그저 멀뚱멀뚱 당근밭만 바라보았다.

죽음이야, 죽음. 죽음도 아깝지 않으리!”

나를 포함한 많은 참가자가 당근꽃이 생소했던 이유는, 당근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뽑히기 때문이었다. 당근은 꽃을 피우지 않더라도 자신의 몫을 한다. 동백동산의 동백나무와 마찬가지로, 당근도, 우리 인생도, 꽃필 때만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석희 삼춘이 당근꽃말로 마을 여행을 시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평화로운 평대리 또한 지난 4.3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깊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눠 듣고자 삼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당근밭을 지나 우리는 평대리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녀분들이 생활했던 불턱에 앉아 석희삼춘이 들려주는 해녀에 관한 시를 들었다. 물질이 끝나자마자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불턱에 손을 녹였던 해녀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춥고 힘든 물질을 해야 했던 해녀분들의 삶을 떠올리니 다시금 마음이 아렸다. 살기 위해 숨을 참아야만 했던 해녀들의 삶이야말로 평대리 물빛보다 더 빛나는 삶이 아니었을까.

 

올레길을 지나 마지막으로 팽나무 아래 초가집에 자리를 잡았다. 석희삼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초가집에는 혹, 혹 하는 쇳소리를 내는 혹 하르방이 살았다고 한다.

마을사람 모두가 혹 하르방을 무서워했지. 사실은, 혹 하르방이 한국전쟁 때 외아들을 잃고 기력이 쇠해서 그러한 괴성을 낸 거였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하르방이 있었기에 마을에 술 마신 어른들의 다툼이 사라졌지. 그 어른들도 혹 하르방이 무서워서 도망다니기 바빴거든. 그리고나서 마을에 평화가 찾아온거야.”

마을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 사회의 아픈 역사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개인 또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고, 그 누구의 일도 남의 일이 아니다. 석희 삼춘은 우리 과거 대통령 곁에, 세월호 선장 곁에 혹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마을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으로는 옆 동네 세화리에 자리한 독립서점, 제주풀무질에서 책방지기 은종복 님을 만났다. 풀무질이란,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의미한다. 책방지기 은종복 님에 따르면, 이 책방 이름은 부당한 정권에 불바람을 일으켜 맞서려는 저항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책방지기 은종복 님은 책방에 세상을 바꾸는 고전, 철학, 인문, 사회과학책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25년째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큰 빚이 생겼지만,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책방지기의 마음이 책방 곳곳에서 느껴졌다. 풀무질을 통해 더욱더 많은 사람이 세상을 진실하고 올바르게 바라보게 되기를, 그래서 책방지기 은종복 님이 꿈꾸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책방지기 은종복 님의 아름다운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여행을 마치며 이렇게 공정여행에 참가하는 것 또한 일종의 풀무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마찬가지로, 여행 또한 사람의 마음과 사고를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삶에 대한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것이 결국 풀무질역할을 하고, 세상을 바꾸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34일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 아이쿱생협 조합원분들과 함께했던 토론들, 함께 감탄했던 제주 자연들이 내 마음 속에는 꽤 큰 바람을 일으킨 것 같다. 아름다운 사진만 남기는 여행만을 해오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을 선물 받는 여행을 하니 아직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이번 여행을 통해 느낀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나 또한 아름다운 세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꿈꿔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