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공정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 [동작구 사회적 경제 탐방 시범사업] 함께 살아가는 우리 동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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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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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여행장소
서울시 동작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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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우리 동네 사람들

글/사진_허민지 코디네이터

 

우리 지역의 사회적 경제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행 코스로 방문할 기관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시범사업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모든 기관에 똑같은 질문을 드렸다.

“동작구에서 사회적 경제 인지도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돌아오는 대답 역시 모두 같았다.

“글쎄요.. 아직 다들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이 시범사업의 목적이 더욱 뚜렷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경제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파괴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출처: 동작구청 홈페이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주거, 환경, 교육 등 지역 문제에 관해 상생과 나눔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조직이 동작구 관내에만 백여 개에 달한다. 이 조직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이 여행이 동작구민들이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장승배기역에 파란 깃발로 모이면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모두 체온을 측정하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손난로를 하나씩 주머니에 넣은 후에 길을 나섰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W by W (더블유 바이 더블유) 협동조합’이다.

공방을 열기 위해 고민하던 경력단절 여성들과 사회 초년생 여성이 모여 2018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W by W’는 ‘Whatever handmade by Woman’의 약자로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누나, 언니들이라는 뜻이다. 공방을 열고 운영하는 데에는 손재주 이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한다. 공간 관리부터, 재료 주문, 행사 참여, 홍보까지 모든 것을 혼자 도맡아야 한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에 여섯 명의 작가들은 협동조합을 이루었다. 공간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누며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여전히 공방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있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응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공유 강의실에서 ‘나전칠기 공예’를 체험했다. 오색빛깔을 내는 아름다운 자개를 이용하여 손거울에 별자리를 수놓는 활동이다. 아이들은 어려워 보인다고 걱정하더니, 어느새 어른들보다도 먼저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참가자들 또한 코팅되어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즐거워하는 참가자들을 바라보는 강사님의 표정에서도 흐뭇한 미소를 보았다.

 

한 참가자는 강의실 벽면에 전시된 다른 공예작품들을 보시더니 본인이 평소 목공에 관심이 많다며 목공 수업을 듣고 싶다고 연락처를 받아 가셨다. 이렇게 한 분야가 다른 분야로 연계되면서 조합원들끼리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협동조합의 최장점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활동을 마치고 '아시안 보울'로 이동하여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아시안 보울 역시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는 식당이다. 이곳은 이주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문을 연 아시안 퓨전 음식점이다. 이주 여성들이 직접 연구하여 모든 메뉴의 레시피를 개발했으며,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싱싱한 재료로 건강한 요리를 제공한다. 요즘 모든 자영업자들이 그렇듯 아시안 보울 역시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건물이 오래되어 관리비도 여타 식당보다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오희 대표님이 식당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곳에서 일하는 이주여성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주여성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한다.

 

아시안 보울의 또 하나 특별한 점은 2016년 KBS2에서 방영되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출연진이 내부 인테리어 공사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게 곳곳에서 출연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쌀국수와 나시고랭, 그리고 월남쌈을 먹었다. 원래 호불호가 분명한 동남아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주방장님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갖춘 덕분인지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친근한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권오희 대표님에게 직접 식당 소개를 듣고 인사를 나눴다. 이날 역시 현충원에서 행복 공부방 어린이들과 프로그램을 하시다가 중간에 시간을 잠시 내어 들려주신 것이다. 이주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식당 운영부터 이주여성들의 자녀를 돌보는 일까지 맡은 그녀에게서 생’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우리는 ‘제로 웨이스트샵 지구’로 향했다.

2018년 설립된 예비 사회적 기업인 지구샵은 낭비 없는 소비를 모토로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 제품 등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별하여 판매하는 상점이다.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 등에 대해 강의와 실습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골목에 위치한 지구샵에 도착하니 김아리 대표가 반갑게 여행자들을 맞아주었다. 친환경 재료인 밀랍으로 만든 캔들, 폐현수막으로 만든 가방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다양한 제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쓰레기 문제는 동작구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이다. 그만큼 환경운동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적 실천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구샵은 동작구민에게 지구를 대체할 ‘플래닛 B’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쓰레기 배출을 줄일 것을 권하고 있다.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제로 웨이스트 상품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하나씩 바꾸어 나가다 보면 언젠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물건을 구입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지구샵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문을 나서는데 대표님으로부터 예상치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여행 참가자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누어주라고 건넨 종이가방에는 케이스까지 재사용이 가능한 고체 치약이 들어있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종이가방이었다. 종이가방에는 ‘지구샵’이 아닌 ‘본죽’이 쓰여 있었다. 지구샵에서는 종이봉투를 모아 재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소한 부분에서 지구샵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은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 진행되었다.

시장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주거지 가운데 위치한 도서관이 등장했다. 2010년에 개관하여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은 작은 규모에서 아늑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이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이웃과 소통하는 동네를 만들자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이곳은 책을 읽고 대출하는 도서관 역할뿐만 아니라, 잠시 들려 숨을 돌리고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도 맡고 있다. 더불어 동네의 작가들과 협업하여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그중 하나인 민화 그리기 체험을 신청했다. 동네 공방 ‘스튜디오 하숙’에서 활동하는 김효남 작가님이 강의를 진행하셨다. 복잡해 보이는 봉황 도안에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난색을 표했지만 이내 곧 색을 칠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에도 역시 가장 먼저 채색을 끝낸 어린이들은 다락방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집에서도 안 읽는 책을 읽는다며 놀라워했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도서관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성인 참가자들도 어느새 형형색색의 색깔 조합에 빠져들어 있었다. 햇살을 맞으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모습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림 테두리에 금테까지 두르니 정말 근사한 작품이 완성되었다. 다들 자신의 작품을 이리저리 보며 감탄과 뿌듯함을 숨기지 못했다. 참가자들의 작품을 모아놓으니 도안과 사용한 물감이 같은데도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이렇게 전부 다른 존재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것 또한 사회적 경제가 추구하는 지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설경 관장님의 도서관 소개와 마을 공동체 안에서 도서관의 역할을 들으며 마지막 활동을 마쳤다.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요즘 도시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주민들이 간식을 사들고 들어와 나눠 먹으며 한참 시간을 보내다 간다. 이러한 정겨운 풍경은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함께 살기”를 추구하는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이 숨어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안전한 여행을 위해 소수의 인원으로 진행하였다. 적은 인원이기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 참가자들이 설문조사에 답해주신 것처럼 이 여행이 동작구에 자리 잡아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경제와 친해질 수 있길 기대한다. 더 따뜻한 세상을 위해.